1935-1960 1945년 Y.M.C.A를 설립 하다. 소년,소녀 면려회를 조직하다.
2012.01.17 11:12
Y.M.C.A를 설립 하다.
소년,소녀 면려회를 조직하다.
![21]한부선 선교사 송별기념 청주제일교회 청년 면려회 1936.9...jpg](http://polyk.bcpark.net/xe/files/attach/images/993/494/005/3f68434cbd3423329c50a2c8f09d8e4a.jpg)
![274] 청주제일교회 소녀 면려회일동1944년 10월경.jpg](http://polyk.bcpark.net/xe/files/attach/images/993/494/005/66b339aa0fb45f9ed26e9cddef60a6fc.jpg)
![275] 청주제일교회 소녀 면려회원 성탄절기념 1943년경.jpg](http://polyk.bcpark.net/xe/files/attach/images/993/494/005/4635c6c1abd07ccc512109a151098fca.jpg)
해방 후 청주제일교회에 활기를 안겨다 준 것은 젊은 학생․청년들의 활동이었다. 그동안 일제의 압력으로 활동이 약화되어 있던 종래의 면려회를 부활하여 소년면려회(회장 유병인), 소녀면려회(회장 우영애)를 조직하였고, 청년면려회를 조직하여 활동함으로써 교회 내에 참신한 역동성을 불어 넣었다. 이들 면려회는 자치적 성격을 가진 조직인데, 면려회의 부활은 교회 구성원들의 자율적인 활동을 제고한다는 의미 외에 또 다른 역사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일제는 식민통치 말기에 기독청년들의 민족정신을 약화시킬 목적으로 교회내의 면려회를 억압하고 대신에 “공려회(共勵會)”라는 어용단체를 만들어 교회 청년들을 친일화로 강제 유인하여 갔는데, 이제 면려회가 부활되었다는 것은 일제 식민지 시대 교회 박해의 일면을 청산하고 과거의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는다는 역사적 의의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1947년에에는 예배당 아래층에서 12명의 남학생이 모여 기독학생회를 구성하였다. 그리고 1948에는 기존 면려회라는 이름 대신에 각각 남학생회(회장 유병인) 여학생회(회장 권명숙)로 학생회 명칭을 바꾸어 활동하였는데, 중고등학생을 위한 학생주일학교를 신설하여 학생들의 신앙을 육성하면서 미래의 일꾼을 키워나갔던 것이다. 학생회에서는 학생들의 친목을 도모하고, 학원 선교를 위하여 모임을 갖기도 하고 교회 내외의 봉사 활동에 적극 참여하였는데, 특히 하령회를 통한 신앙 훈련은 전쟁과 분단으로 인한 사회 혼란 가운데에서도 젊은이들에게 기독교 정신에 의한 꿈을 키워나가도록 하였던 것이다. 학생회의 활동은 세광중․고등학교가 설립되면서 더욱 활성화 되었던 것이다.
청주기독소녀면려회와 중등학생회 활동
소녀면려회(少女勉勵會)는 교회 미혼 여성들을 중심으로 하여 조직한 여성단체이다. 청주기독소녀면려회는 1930년 11월 19일에 청주성경학원에서 창립되었다. 이에 관한 기사가 『기독신보』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淸州】
1. 11월 19일 오후 2시에 청주성경학원에서 이순남 선생의 지휘 하에 청주소녀면려회를 조직하였는데 임원은 다음과 같다.
회장 : 이필례 서기 : 이규순
회계 : 정규숙 고문 : 조운선598)
그 이듬해에는 돌잔치가 벌어졌다. 이에 관한 기사가 1931년 12월 『기독신보』에
청주기독소녀면려회는 작년 12월 1일에 창립되어 그동안 주일마다 따로 예배드렸으며 오락회도 가끔 열어 가장 재미있게 지내오는 중, 한편으로는 사탯말주일학교까지 만들어 인도하며 교회 안에 있는 기관 중에 가장 활동이 많으며 따라서 재미도 많은 아가씨들의 모임인 바 지난 12월 1일 밤에 고문 에스텝 씨 댁에서 그 회의 창립 1주년 기념식을 성대히 거행하였는데 기념식 끝에 예수님 행적의 환등과 다과회까지 벌어져 풍성한 돌잔치를 하였던 바 손님들도 많이 참석하시어서 즐거움을 한가지로 나누었다 한다.599)
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를 보면 청주기독소녀면려회는 주일마다 따로 예배 모임을 갖었고, 친목회도 자주 열어 회원들의 결속을 다져나갔음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전도도 활발히 하여 농촌교회 주일학교를 지원하기도 하였는데, 사탯말의 주일학교를 열어 인도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창립 1주년이 되는 1931년 12월 1일 밤에는 소녀면려회 고문으로 활동하던 에스텝 선교사가 자신의 집에서 창립 1주년 기념식을 성대히 거행하였을 뿐만 아니라 기념식이 끝난 후에는 환등기로 ‘예수의 행적’을 상영하고 다과회도 가지면서 돌잔치를 하였음을 알 수 있다.
1937년에는 청주제일교회 남자기독청년면려회, 여자기독청년면려회, 소년면려회, 소녀면려회가 합동으로 신앙훈련을 가지기도 하였다.
淸州第一敎會 男子基督靑年勉勵會. 女子基督靑年勉勵會. 少年勉勵會. 少女勉勵會에서는 지난 1월 27일 오후 7:30에 第一敎會堂에서 李彰宰씨를 모시고 李鍾萬씨 司會로“基督의 寶血과 靑年”이라는 演題로 수백명 聽衆에게 靈感的 激勵辭가 있었고, 계속하여“다윗의 돌팔매”라는 성화로 소년소녀를 激勵하고 가정평화의 聖漫談은 興味진진한 중에 청년남녀의 가정생활에 커다란 覺醒을 주고 10시에 폐회하고 상당유치원에서 懇親會(친목회)로 모여 胸襟을 털어놓고 재미있게 지냈다고 한다.600)
그리고 청년들의 활동, 여전도회의 활동, 소년면려회 소녀면려회 등의 영향을 받아 중등학생회도 출현하였다.
【淸州】청주읍장로교회 예배당에서는 중등학생회 주최로 소년소녀 현상동화 동요대회를 지난 21일 밤에 열었는데 대만원을 이루었으며 수상자는 다음과 같다.601)
동화부 : 1등. 이삼표 2등. 이재흥 3등. 나일봉 4등. 최영준 5등. 이재환
동요부 : 1등. 김순례 2등. 윤숙구 3등. 이화복
이처럼 교회 내의 각종 면려회 및 중등부의 활동이 활발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