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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출 목사 사임하다.
안봉걸목사(11대) 취임하다.

 

 

안봉걸 목사 취임

조선출,안봉걸목사2.JPG

조선출 목사 내외분과 안봉걸 목사 내외분

(1) 안봉걸 목사 위임

조선출 목사가 대구 YMCA로 전출하자 부목사인 안봉걸 목사를 위임 목사로 세우자는 여론이 팽배하였다. 소탈하고 순박하며 특히 주일학교 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부목사를 인정한 것이다. 마침내 1964년 3월 22일 주일 대 예배를 마친 후, 원로 목사 구연직 목사가 안봉걸목사 위임투표를 위한 공동의회 의장이 되어 가부 토표에 들어갔다.

“제일교회 위임목사 청빙에 관한 건-제일교회 위임목사를 청빙함에 관하여 가부를 무기명투표로 의결하니 다음과 같이 청빙하기로 가결하다. 투표 상황 교인총투표인수 179명 가표 175 부표 3 기권 1”3)

이리하여 안목사는 대부분의 교인의 신임을 얻어 위임 목사로 결정되어 더욱 희망찬 가운데 목회를 시작하였다.

안봉걸 목사는 1919년 9.28일에 황해도 장연군 해안면 순계리에서 안승연씨의 8남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일제말기인 1943년 일본 지바(千葉) 敬愛高等學校(전 關東中學校)를 졸업하고 귀국하여 장연 서원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본래 신앙심이 돈독한 그는 목회의 뜻을 두고 1947년 한국신학대학에 입학하였으며 더불어 1년간 장연 서부교회 전도사로서 교회를 섬기던 중 신앙의 자유를 찾아 월남하였다. 남한에는 아무 혈육도 없이 홀로 피나는 고생을 하며 신학을 공부하던 그는 1952년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는 처음 전북 임실읍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하였다. 그곳에서 목회하면서 교회에서 운영하는 시온중학교 학원장을 겸하면서 목회와 교육에 헌신하였다. 그는 5년간 목회를 한 후 1957년에 신황등교회 목사로 전임하였다. 그곳에서 1958년 5월 30일에 사모 김혜수 사모와 결혼하였다. 그는 신황등교회에서 목회하면서 군산 종합기술학원장을 겸하였는데, 약 1년간 기술학원장을 한 후에는 1959년 단독으로 황등 가정여학교를 설립하여 초대 학교장에 취임하여 학교를 발전시켜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62년 말에 청주제일교회 부목사로 부임한 것이다.

이후 당회에서는 1964년 6월 28일에 위임식을 거행하기로 하였고, 4) 그에 따라  당일 오후 2시 30분에 안봉걸 목사 위임식이 거행되었다. 위임국장 엄기현 목사가 사회를 맡았다. 이 때 홍청흠 목사가 기도하고, 박재봉 목사가 성경을 봉독하였으며, 한신대학 명예학장 김재준 박사가 ‘그리스도의 마음’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하였다. 위임국장이 목사와 교회에게 서약한 후 공포하였다. 구연직 목사가 목사에게, 한빈 목사가 교회에 각각 권면 하였다. 이후 내빈 축사, 홍청흠 장로의 축전 축문 소개, 한옥수 선생의 축하송, 각 기관의 예물 증정 등 축하 순서가 있은 후 안봉걸 목사의 답사가 이어졌다. 박종헌 장로의 광고 후 1장 찬송 후 배문준 목사의 축도로 취임식이 거행되었다.

안봉걸 목사는 강단을 맡고 담임 목회를 하기 시작하면서 무엇보다 먼저 성도간의 교제와 화목에 관심을 집중하였다. 그리하여 축도 전에 “성도의 교제” 시간을 마련하여 분위기를 쇄신하였다.

그는 좌석도 각 구역별로 함께 한 자리에 앉아 예배드리도록 하였다.

안봉걸 목사는 심방을 강화하였다. 춘계 심방도 있지만 특별 대 심방을 추진하였다.  4월 3일, 교회 사무실에서 각 단체 대표자 회의를  열고, 특별 대심방 계획을 세워 추진하였다. 이학림 전도사와 각 구역 권찰의 도움을 받아, 특별 대심방단을 조직하였는데, 여성만이 아니라 장로 및 안수 집사도 동원하여 8대의 심방대를 편성하고, 주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2주간 동안 특별 대심방을 전개하였다. 자주 빠지는 성도 및 유고 성도를 찾아 심방하고, 교회 출석 독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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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창립 60주년 행사 

1964년은 교회창립 60주년이 되는 해였기 때문에 연초부터 창립 60주년 기념사업에 대한 계획에 들어갔다. 이에 기념사업 연구위원을 두어 전체 계획을 수립했다.

계획된 60주년 기념행사는 기념체육대회로 시작하였다. 1964년 10월 10일에 청주제일교회 60주년 기념체육대회가 세광학원 운동장에서 개최되었다. 원로 목사인 구연직 목사가 명예대회장이 되고, 담임목사 안봉걸 목사가 대회장이었으며, 부대회장으로 이상필, 박찬석, 계획부는 한기창, 이쾌재, 행사부 전원이었으며, 심판부장에 안봉걸 목사, 준비부장에 이태희, 경비부에 신택희, 보도부에 최동준, 구호부에 홍명숙, 기록부에 최인호, 응원부에 홍청흠 등이 활약하였다. 온 교인들은 세광학원 운동장에 모여 각종 게임과 놀이를 통하여 제일 가족 사랑의 공동체를 가졌다.

그 다음달 11월 15일 주일에는 교회 설립 60주년 기념식이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대회주제는  “그리스도는 영원히 여기에 계시다.”로 정하였다. 이곳에 60년 전 교회를 세워주신 주님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여기에 계셔서 성도들과 함께하시며 돌보아 주심을 감사하고 또 염원하는 뜻에서 이렇게 정하였던 것이다.

외부 강사로 문동환 목사(한신대 교수), 홍현설 목사(감신대 교수)가 초빙되었는데,1) 이들은 기념대회 전날(14일)인 토요일에 청주에 도착하였다. 교육부는 토요일 밤에 교육관에서 문목사를 모시고 기독교교육에 관한 좌담회를 가졌다. 그리고 주일 새벽기도회를 인도하게 하고, 아침 (9시부터 1시간) 기독교 교육 특강의 강사로 모셨다. 평소 쉽게 모실 수 없는 문목사였던 만큼 그에게 많은 일정을 부탁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11시부터 시작하는 대예배에는 홍현설 목사가 설교를 담당하였다. 이어 오후 2시에 창립 60주년 대기념식이 거행되었다. 60주년의 기쁨을 축하하는 기념식이 내빈 여러분과 함께 본당에서 성대히 거행되었는데, 이 기념식에서 홍현설 목사가 메세지를 전하였다.

이날 기념식에서 오랫동안 담임목사로 있다가 원로 목사가 된 구연직 목사의 창립 기념사가 있었다. 이 기념사의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삼각산은 흑운(黑雲)에 잠겨있고 선교의 신풍(新風)은 반도강산을 휩쓰는 이때에 청주지방 유지인사는 천국 이상을 듣고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일어나 천주교도의 희생처럼 일대 건물을 매수하여 교회를 창설하고 이름 하여 ‘청주제일교회’라 하였으니 충북노회의 대교회로 사업의 중심지요 사상의 중심지라. 오늘에 와서 과거 회상컨대 신도의 업적보다 하나님의 은총이 음성(陰聲)2)하도다. 사도(使徒)의 전형(典型)이 엄명하며 신덕(信德)3)이 겸비로다. 지난날 예의준수(禮儀遵守)하며 화기춘풍(和氣春風)4)이로다. 은로(恩露)5)가 패패(牌牌)6) 하여 중령중생(衆靈重生)7) 이로다, 성령이 용권(用權:권세를 부림)하며 영란주해(營難週害)8)에 승리로다 생의영광이 찬란하여 역대 공리(公吏)가 원조(援助)로다 그리스도가 축복하여 이단이 감히 범하지 못 하리로다. 동량지재(棟樑之材, 인재)9) 빈빈(彬彬)10)하여 만만세세(萬萬世世) 무궁(無窮)이로다.”

구연직 원로목사는 구학문의 학식이 많았기 때문에 요즈음 사람이 보면 이해하기 힘든 어려운 한문 투의 용어를 많이 사용하여 기념사를 하였다.

이날 기념식 때에 특히 의미 있었던 일은 김재준 작사, 나운영 작곡의 ‘청주제일교회가’가 60주년 기념으로 제정되어 처음 연주되었다는 것이다. 기념 축하 행사 때에 성가대의 선창과 온 교인들의 제창으로 함께 불렀는데, 온 교인들은 교회 사랑하는 마음과 교회의 자긍심을 가지며 감격했다.

기념식이 끝난 후 3시 반부터 홍정흠 장로의 사회로 교육관에서 “60주년을 맞은 교회의 회고와 전망”이라는 주제로 좌담회를 개최하였다. 그날 오후 7시부터 시작하는 밤 예배는 각 기관 및 단체가 연합으로 ‘축하음악예배’를 드렸다.

다음날 월요일 밤에는 강원룡 목사(크리스챤 아카데미원장)를 초빙하여 기독교 사상에 대한 강연을 들었다. 화요일에는 오후 5시부터 여전도회 주관으로 유년부 및 초등부 직원 환담회를 개최하여 교사 위로회를 가졌다. 수요일 밤 예배에는 기도회 및 각 구역별 노래자랑을 개최하여 축제의 분위기를 자아내었다. 19일 목요일에는 남전도회 주관으로 청년회 환담회를 가졌다. 그리고 이튿날 20일(금요일)에는 청주시내 어린이주일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동요 동화대회를 개최하였다. 그리고 21일 토요일에는 시내 교회 성가대를 초빙하여 성가경연대회를 가졌다. 단순히 누가 누가 잘하나 식의 경연대회가 아니라 음악 감상과 좌담회도 열어 성도들의 기독교 음악의 소양을 높이도록 배려하고자 연대 음대 교수인 나운영 교수를 초빙하여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이날에도 60주년 기념으로 제정된 제일교회가가 제일교회 성가대를 통하여 연주되었다.  

교인들은 행사를 위해 화분을 자원하여 헌납하였다.

그리고 60주년 기념행사 비용은 교회 재정에서 충당하기도 하였으나 성도들이 60주년 기념비조로 자원하여 헌금하였다. “금년 60주년 기념행사비 미납하신 분은 속히 납부하여주시기 바랍니다.”라는 것을 보면 약속하고도 연말이 되어도 미처 헌금하지 못한 사람이 있었던 같으나, 온 교인은 협력하여 선교와 교육과 청년과 찬양을 중심축으로 행사를 진행하였다. 여러 가지 특별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의미 있는 행사를 벌이며 지난날 함께 하신 에벤에셀의 하나님께 감사하고 앞으로 교회의 신앙적 전통을 소중히 하며 교회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교회를 만들려는 새로운 결심을 하는 기회가 되었던 것이다.

 

2) 음성(陰聲)이란 동양 음악의 십이율 가운데 육려(六呂)에 속하는 여섯 음. 대려(大呂), 협종(夾鐘), 중려(中呂), 임종(林鐘), 남려(南呂), 응종(應鐘)을 말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은택이 은은히 넘쳐 남을 의미한다. 3) 신앙과 덕망, 곧 믿음과 행실을 의미하는 말.

4) 온화한 기색이 따스한 봄바람과 같다는 뜻으로 화기애애하다는 의미

5)  은혜로운 이슬

6)  여러 패, 곧 가지가지 많이 있음을 의미함.

7) 뭇 영혼을 거듭나게 한다는 뜻

8) 횡행하는 재난과 엄습하는 해악을 말한다.

9) 한 집안이나 한 나라를 떠받칠만한 능력을 갖춘 인재를 이름.

10) 문체와 바탕이 모두 갖추어져 훌륭하다는 뜻

 

‘청주제일교회’가 제정

 제일교회는 1964년 11월 15일 교회 창립 60주년을 기념하여 교회가를 제정하여 부르기 시작하였다. 교인들로 하여금 교회 사랑하는 마음과 교회 기풍을 발양시킬 목적으로 교회가를 제정하여 보급하였던 것이다. 작사는 한신대 총장인 김재준 박사가, 작곡은 연세대학교의 나운영 교수가 맡았는데, 교회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여 만백성을 구원하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그런 교회의 기풍을 진작시켜 나갈 것을 담은 노래였다. 

 작곡자 나운영 교수는 11월 21일 토요일 제일교회에서 열린 성가경연대회에 참가하였는데, 그 때에 가사의 뜻을 살리면서 작곡의 취지를 설명하였다.

교회가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곡도 함께 옆에 실어주자)

 

1. 사천년 굳은 마음 은혜로 축이시고

하늘나라 씨 뿌리니 열매 맺어 이 교회일세

(후렴) 주님 영광 머무소서 길이 길이 머무소서

생명 샘 넘쳐흘러 만 백성 살리소서

2. 주님 피로 인친 구원 사도들이 받고 물려

땅 끝까지 전파하니 복음의 터 이 교회일세


   3. 부름 받은 성도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주님 마음 체 받아서 섬기는 이 교회일세

4. 하늘의 빛 땅의 소금 역사에는 누룩 되어

새 하늘 새 땅 보며 자라는 이 교회일세

1절에서 먼저 하나님의 은혜로 이 곳에 복음의 씨가 떨어지고 성장하여 크게 열매 맺은 것을 감사하고 있다.

2절에서 이 교회는 구원 받은 주의 백성들이 땅 끝까지 복음과 진리를 전하는 복음전파의 전통을 유지 발전시켜 가는 교회가 될 것을 노래하고 있다.

3절에서는 날로 부흥 발전하되 주님의 뜻에 합한 교회가 되기를 기원하고 있고 4절에서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교회의 사회적 사명을 잘 감당하는 그러한 교회,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성장하는 교회가 될 것을 노래하고 있다.

후렴에서는 결국 생명 샘 넘쳐흘러 만 백성을 살리는 교회가 됨으로써 주께서 이교회를 통하여 영원히 영광 받으시기를 기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제목
교회 전체 연혁
1904년11.15 청주읍교회를 설립하다.
1904년 청남학교를 설립(현 청남초등학교) 하다. file
1928년 당회조직하고 덕촌교회을 개척하다.
1936년 김영로목사 사임하다.박상건목사(8대) 취임하다 file
1910년 박정찬목사 초대목사로 취임하다.
1911년 오죽교회를 개척하다.
1912년 박정찬목사 사임하다. 이원민목사(2대) 취임하다.
1913년 최영택장로 장립(최초의 피택장로)하다. 부인 전도회를 조직하다 file
1914년 이원민목사 사임하다. 황준국목사(3대) 취임하다.
1915년 곽경환, 이동순 장로 장립하다.
1917년 소민병원를 건축하다. file
1918년 황준국목사 사임,최영택목사(4대) 취임.김정현, 김중원 장로 장립,청년전도부를 조직하다.
1919년 3.1만세 운동 전개를 시도하다 실패하다.남자 전도회를 조직하다 file
1920년 외덕교회를 분립(현 우암교회),김태희, 최원진 장로 장립,예배실 남녀 좌석 구분 휘장를 철거하다.
1921년 최영택목사 사임,황청교회 개척를(현 상야교회)하다.
1922년 함태영목사(5대) 취임,이호재장로 장립,청주성경학원를 설립, 청신야학를 운영하다. file
1923년 망선루를 본 교회내로 옮기다.함태영목사 총회장(제 12회 총회)에 피선되다.
1924년 서상필 장로 장립(10.1)
1928년 함태영목사 사임.경환목사(6대) 취임.하기 아동성경학교를 개최하다. file
1929년 상당유치원를 개원하다. file
1931년 이상필장로 장립하다.
1932년 경환목사 사임,김영로목사(7대) 취임,부속건물 신축(목사관,전도실,유치원)를 하다
1934년 창립30주년 기념행사, 제2교회(현중앙교회)분립하다. file
1937년 박상건목사 신사참배 문제로 만주로 망명하다.
1938년 구연직(9대) 취임하다. 송재경, 안희상장로 장립하다.
1939년 현 예배당를 착공하다. file
1940년 현 예배당를 완공되다. 대전제일교회를 개척하다. file
1941년 충청성경학원를 설립하다
1942년 선교사들 철수하다.
1945년 Y.M.C.A를 설립 하다. 소년,소녀 면려회를 조직하다. file
1946년 충북노회를 조직되다. 초대 노회장으로 구연직목사 피선되다.
1947년 학생성가대 조직(메시야성가대)되다.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충북지부장 구연직목사 중심으로 교회 청년들 반공투쟁 주도하다.
1948년 이창수, 홍청흠장로 장립 하다.
1949년 교회증축공사를 착공하다. 세광중학교를 설립하다.(9.15)
1950년 학생회 '성종' 창간호를 발간하다.
1951년 교회 증축공사를 완공하다. 주보 창간호를 발간(10월 7일 제 1호)하다. file
1952년 북문교회를 개척하다. 김현태장로 장립하다.
1953년 세광고등학교를 설립. 교회희년 축하예배. 청신고등공민학교 인수하여 운영하다.
1955년 한국기독교장로회에 가입하다. 박찬석장로 장립하다.
1956년 최초의 표어 '자기 십자가를 지고'를 제정, 남산교회를 개척,박종헌장로 장립하다.제5회 기청 전국교육대회 유치
1957년 구연직목사 총회장(제 42회 총회)에 피선되다.
1958년 박기순,박윤이,오성애,이삼례,장복덕, 조윤순 안수집사에 취임하다.
1960년 세광고교 대성동으로 이전하다. file
1961년 구연직목사 은퇴 원로목사로 추대, 조선출목사(10대) 취임하다. file
1962년 최인호, 김영훈장로 장립하다 file
1963년 노준성 이명수 한기창장로 장립하다. file
1964년 조선출 목사 사임, 안봉걸목사(11대) 취임, 교회창립 60주년 기념행사, 청주제일교회가 제정 file
1966년 안봉걸 목사 소천하다. 강신정 목사(12대) 취임하다. file
1968년 이태희 엄평우장로 장립 file
1969년 강신정목사 사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