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광중학교 세광고등학교
세광학원 설립과 배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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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건국과 함께 교육의 수요가 커지고 있을 때 청주제일교회 구연직 목사와 이상필 장로는 "다른 도에는 모두 기독교계 중등학교가 있는데 우리 도에만 유독 그런 학교가 하나도 없어서야 되겠는가?"하고 기독교 중등기관의 창설을 추진하였다. 먼저 청주제일교회 당회실에서 당회원들과 협의하여 동의를 얻었다. |
(제일교회를 주축으로 하여) 1947년에 충북노회로부터 기독교 학교 설립 기성회 조직을 위임받아 같은 해 8월 30일 청주제일교회에서 구연직 목사의 사회로 '기독교학교설립기성회총회'가 개최되었다. 회장에는 당시 노회장이었던 구연직 목사가 선출되었다. 기성회에서는 먼저 학교설립을 위한 충북노회 유지재단 구성을 서둘렀다. 청주제일교회를 비롯한 여러 교회 재산이 재단에 들어갔으나 그래도 학교설립 요건을 충족시키기는 역부족이었다. 이 일에 남달리 관심을 가지고 있던 이상필 장로가 오창면에 소유하고 있던 전답을 1949년 노회재단에 기부함으로서 마침내 9월 25일 유지재단 인가를 받을 수가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줄기차게 학교 설립인가를 노력하여 왔는데, 드디어 1949년 7월 27일, 세광중학교(6학급에 300명)의 설립이 인가되었다. 이어 1949년 9월 15일 세광중학교가 개교하였다. 1학년 2학급 100명이 제일교회 구내에 있던 망선루에서 감격적인 개교예배를 드림으로 오늘의 세광학원이 출범하였다. 초대 교장에 김성실(金誠實)목사가 임명되었다.
2) 성장과 발전 이와 같은 세광 중고등학교의 설립은 다른 선교부 지역과는 달리 순수한 이 지역 기독교인의 노력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데에 커다란 의의가 있다. 나아가 충북노회에서는 중고등학교를 발판으로 기독교 대학 곧 세광대학으로까지 발전시키려 계획을 세워 1954년 세광대학설립 기성회를 조직하였다. 그러나 기독교 대학 설립의 문제는 당시 전국적으로 휘몰아 온 기장과 예장의 분립의 진통을 겪는 바람에 충북노회도 기장과 예장으로 나뉘어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계획이 무산되고 말았다. 1954년에는 중학교 임시교사가 대성동에 마련됨에 따라 중학교가 대성동으로 이전하게 되었고 고등학교는 제일교회 구내 망선루로 옮기었다. 1955년에는 교육재단을 종교재단에서 분리하라는 정부 방침에 따라 재단법인 세광 학원이 설립인가를 받아 예수교장로회 충북노회 유지재단으로부터 완전히 분리 독립하였다.
학원창립 40주년이 되는 1989년에는 대성동의 학교부지를 매각하고 미평동에 3만 2천여 평의 땅을 매입하여 전용 야구장을 포함하여 커다란 중·고등학교 운동장을 만들고 대규모의 현대식 교사를 신축하여 이전하여 제 2의 도약기로 들어갔다. 미평동 교사 신축 및 이전 사업에 청주제일교회 이쾌재(李快載) 목사(세광학원 이사장)와 홍청흠(洪淸欽) 장로(건축위원장)가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또한 청주제일교회는 1998년에 100주년 기념 사업으로 245평의 기숙사, '한빛학사'를 신축 기증함으로써 오늘의 사립명문학교로 성장하는 계기를 마련하였고, 학원선교 차원에서 매년 세광중·고등학교 야구부 육성비 및 학생 장학금을 지원하는 등 학교 발전에 크게 도움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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