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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황준국목사 사임,최영택목사(4대) 취임.김정현, 김중원 장로 장립,청년전도부를 조직하다.

최영택 목사 부임

1918년 황준국 목사가 경상도로 이임하고, 청주읍교회에서는 최영택 장로를 목사로 세웠다.

 

최영택 목사(1874~ )는 1874년생으로 청주읍교회 출신이다. 그는 1912년 청주선교부에서 권서로 임명되어 활동 하였고, 민노아 선교사의 도움으로 1913년 평양 장로회신학교에 입학하였다. 신실한 그는 1914년 청주읍교회 최초의 장립 장로가 되었고, 조사로 시골 교회를 돌보았다. 그는 1918년 봄 평양 장로회신학교를 졸업(11회)하고, 그해 6월 18일 승동교회에서 열린 제14회 경충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청주읍교회에 부임하여 계군 목사와 동사목사가 되었다.

충청북도 시찰위원회 보고 : 청주당회 치리에 대한 일과 목사 월은(月銀, 매월 지급하는 생활비)을 더하려고 한 일과 황준국 목사 사면에 대한 일과 후임목사에 대한 일과 먹방이(묵방)와 괴산 교회에서 장로 1인씩을 청원한 일로 협의하였습니다.1)

황준국 목사 사면의 일과 후임으로 최영택 장로를 목사로 모시기 위한 논의가 당회에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청주읍교회는 본 교회 장로 출신의 최영택 목사를 제4대 목사로 맞게 되었다.

  청주읍교회에서 신학 금년 졸업생 최영택씨로 계군 씨와 위임 동사목사로 청원 한 것을 허락하기로 가결하다.

더불어 장로 2인을 세우려 허락을 받았고 김정현과 김종원이 1918년 장로 장립되었다.

최영택 목사는 청년전도부(1918), 남자전도회(1919) 등으로 교회 청년들을 조직하여 복음 전도는 물론 사회 문화 운동에 앞장섰다. 재임 중 3.1운동이 발생하자 교회 청년 및 교인들의 민족 운동을 적극 지원하였다. 또한 야학을 개설하여 의식 계몽과 지식 보급에도 힘을 기울였다.

이러한 이유들로 최영택 목사는 일제의 간섭과 감시를 많이 받게 되고, 결국 1922년 청주읍교회를 사임하고 1922년 7월 1일 광주 북문밖교회(현 광주중앙교회)로 전임하였다. 그 후 그는 괴산읍교회와 전북 부안읍교회에서 목회하였다.

3) 산읍교회(1930. 10~1934. 4. 10.), 부안읍교회(1938. 3. 27~39. 11. 20)에 시무 하였다. 최영택 목사가 괴산읍교회를 사임한 연대는 『괴산제일교회 100년  사』를 따랐고,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제22회 회록』에는 1933년 괴산읍교  회를 사면한 것으로 기록 되었다. 최영택 목사의 이임 후에는 청주읍교회 초대  목사 출신의 박정찬 목사가 괴산읍교회를 시무(1935~1941) 하였다. 『괴산제일교회 100년사』, 『부안교회 요람』(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