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19304 1931년 이상필장로 장립하다.
2012.01.17 10:37
1931년 이상필장로 장립하다.
이상필 장로 장립
이상필(이상필, 1892. 11. 8∼ )장로는 1892년 11월 8일 청주군 오창면 탑리에서 이현우의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그는 7살 되던 해에 아버지를 여의고 할아버지 밑에서 한문을 수학하였다. 13살에 김금분과 결혼한 후 그 이듬해 4월 동리의 사립보성학교 고등과에 입학하여 3년 동안 수학하였다.
1919년 3.1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청년들을 규합하여 독립 만세를 부르다 구속되어 15일간 구류를 당하였다. 1925년 여름 동리 탑리교회에 출석하여 예수를 영접하고 세례를 받았다.
1926년 10월 청주읍교회로 이명하였다. 그는 신앙과 헌신적인 교회 봉사로 교인들의 인정을 받았다. 경환 목사, 한부선 선교사, 조관식 집사, 조운선(Olga Johnson) 여선교사 등과 함께 상당유치원 설립에도 기여했다. 1931년 5월 30일 청주읍교회 장로로 장립하였다. 이후 교회 회계로 봉사하였으며 1939년 이후 오랫동안 상당유치원장 원장을 역임하였다.
해방 후에는 재건된 충북노회 회계로서 신실하게 봉직했다.
그는 일제 말기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고난을 받았고 6.25 전쟁 때에도 고통을 받았다. 그는 신앙을 버리고 자수하면 살려 주겠다는 북한군의 말을 따르지 않고 탈출하다 붙잡혀 청주형무소에 수감되었다. 9.28 수복 이후 북한군들이 패주하며 청주형무소를 방화하였으나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고 한다.
그는 세광학원(세광중?고등학교) 설립이사로 세광학원 발전에 기여했다. 그는 슬하에 6남 3녀를 두었으며 장남 이태희 장로는 대를 이어 청주제일교회를 섬겼다. 이상필 장로는 청주제일교회와 세광학원을 충성으로 섬기다 1971년 2월 5일 향년 79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장례는 청주제일교회장으로 치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