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5-1960 1949년 교회증축공사를 착공하다. 세광중학교를 설립하다.(9.15)
2012.01.17 11:16
교회증축공사를 착공하다.
세광중학교를 설립하다.
1949년 7월 27일, 세광중학교(6학급에 300명)의 설립 인가를 얻을 수 있었다. 이어 1949년 9월 15일, 세광중학교가 망선루에서 개교했다.1) 1학년 2학급 100명이 제일교회 구내에 있던 망선루에서 감격적인 개교예배를 드림으로써 오늘의 세광학원이 출범한 것이다. 초대 이사장은 구연직 목사, 초대 교장에는 김성실(金誠實)목사가 부임했다.2)
1) 처음에는 ‘세광초급중학교’로 개교했다가, 1950년 5월 20일에 ‘세광중학교’로 개명하였다.
청주제일교회 구내에 있는 망선루에서 출발한 세광중학교는 운동장도 없는 열악한 교육 환경에서 좀 더 넓은 학교 부지를 물색하고 있었다. 마침 2대 도지사로 부임한 이광 지사는 교육사업에 호의적이었다. 한국 독립당 활동으로 독립투사 경력을 가진 그는 그간 본교회의 위상을 잘 이해하여 주었고 구연직 목사의 교육 사업에 대한 강한 의지와 숭고한 취지에 동조하였던 것이다. 그 결과 적산건물 및 땅으로 되어 있던 博仁會와
공동묘지가 있던청주시 대성동 5번지의 땅 11,000여 평을 1951년에 염가로 세광학원에 학교 부지로 불하하여 주었던 것이다. 더욱이 중학교 초대 교감인 이동철 선생은 이광 도지사 밑에서 중국에서 함께 독립운동을 한 가까운 동지라는 관계도 작용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대성동 부지 확보와 그 후의 학교 이전은 세광학원이 도약하는 큰 전기가 되었다.
초창기의 세광학교는 열악한 재정 형편과 부족한 시설로 인해 학교 운영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직원들은 공립학교보다 적은 자신의 봉급 가운데에서 일부를 떼어 중학교 교사 3동을 지으며, 신앙적 열성을 가지고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런 속에서 학교는 꾸준히 발전했다.1)
청주제일교회는 학교 발전을 위해 적극 후원하였는데, 특히 학원 선교 차원에서 매년 세광중․고등학교 야구부 육성 및 학생 장학금 지원 등 기도와 물질을 아끼지 않고 적극 지원하였던 것이다
1) 고등학교 3층 후관(1971), 중학교 4층 본관(1975), 강당 겸 예배실(1977), 별관(1985) 등을 신축하고 학급수도 크게 증가하여 중학교 24학급, 고등학교 30학급에 총 3천여 명의 학생과 100여 명의 교직원이 있는 중․고등학교로 성장했다.
세광학원 창립 40주년이 되는 1989년에는 대성동의 학교 부지를 매각하고 청주시 미평동에 3만 2천여 평의 땅을 매입하여 전용 야구장을 포함한 넓은 중․고등학교 운동장을 만들고 대규모의 현대식 교사를 신축․이전하여 제2의 도약기를 맞이했다.
미평동 교사 신축 및 이전 사업에는 많은 이사 및 기독교인들의 힘이 컸지만 특히 학원 이사장인 청주제일교회 이쾌재(李快載) 목사와 건축위원장으로 수고한 홍청흠(洪淸欽) 장로가 중추적인 역할을 하면서 남달리 노고가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