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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3] 제4대 최영택 1918.6.17.~1921.6.21.jpg 1913년 최영택장로 장립(최초의 피택장로)하다.

 

본 교회 출신으로 맨 처음 장로로 장립한 최영택 장로 (1874년생)새로 부임한 이원민 목사는 교회가 부흥하고 교인이 증대함에 따라 당회에서는 2인의 장로를 청원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1913년 6월 묘동교회에서 열린 제4회 정기노회에 2인의 장로를 청원하였고, 이 문제는 노회 정사위원회에서 2인을 허락하였다. 그런데 제5회 노회에서 다시 이미 허락 받은 장로 청원을 취소하고, 다시 청원하여 최원진 최영택 곽경한 3인중 2인을 선택하도록 허락을 받아 놓았다.

그런데 그 이듬해(1914년) 1월 31일에 열린 경충노회 특별회에서는 청주읍교회가 박성로, 김종원 2인을 더 추가하여 장로를 세우겠다고 청원하여 오자, 그것을 허락하였는데, 이렇게 됨으로써 결국 청주읍교회는 4인의 장로를 세울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당시 투표에 의해 피택되어 장로로 장립된 사람은 조사로 활동하고 있던 최영택(1874-?) 한 사람뿐이었다. 노회 규칙에 의하면, “장로는 당회에서 택하되 노회의 허락을 얻은 후에 그 교회에서 투표로 택하고(10조) 장로를 택한 후에 강(講) 받는 것과 장립하는 것은 각각 그 당회와 그곳 시찰위원에게 전권을 위임하도록(제11조) 규정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절차에 따라 1914년 봄 어느 날에 최영택이 장로로 장립되었다. 이로써 최영택 장로는 청주제일교회 출신으로서는 최초의 장로가 되었다.

실은 그는 일찍이 청주읍교회에서 권서로서, 활동하며 복음 전파에 힘을 써 왔고, 더불어 이미 1913년에 평양 장로회 신학교에 입학하여 신학을 공부하고 있었기에 그의 신앙과 열성은 교인들로부터 인정받고 있었기에 최초의 장로로 뽑힐 수 있었던 것이다. 

최영택 장로는 그해(1914년) 6월에 청주읍교회에서 열린 제6회 경충노회 총대로 참석하여 노회 현안문제를 처리하였다2) 그리고 그는 당회원으로서 교회의 영적인 모든 일을 처리해 나갔다. 교인의 신앙과 행위를 통찰하고, 학습 세례 입교할 자를 문답하고, 세례식과 성찬식을 관장하고, 교회 내의 모든 예배를 주관하고, 소속한 기관과 단체를 감독하면서 교인의 신령적 유익을 도모하는 데 힘썼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