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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섭목사(13대) 취임하다.

 

1970년 늦가을, 곧 10월 30일에 서도섭 목사가 청주로 이사하여 11월 첫 주일(11월 1일)부터 시무하였다. 대구 영지교회 시무를 마치고 청주제일교회에 부임한 서도섭 목사1)는 제13대 목사가 되었다.

서도섭 목사가 청주로 이사 온 것은 1970년 10월 30일 금요일이었다. 그날 교회에서는 담임 목사 이삿짐을 실어 오기 위하여 김현태 장로 일행이 대구로 갔다. 이날 이삿짐은 화물차로 탁송하고, 목사 가족은 대구에서 청주로 직접 오는 버스가 없었기 때문에 그레이하운드 고속버스로 대전까지 온 뒤, 대전에서 다시 청주행 직행 버스를 타고 청주로 왔다.

새로 부임하는 목사를 영접하기 위해 교회 마당에 모였던 많은 교인들은 반갑게 목사 가족을 환영하며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그 때 서목사는  보따리에서 무언가를 꺼내셨다. 대구 영지교회 교인들이 만들어 준 떡이었다. 목사님과 사모님이 내 놓은 떡으로 교회마당에는 즉석 잔치가 벌어지기는 하였지만, 그 떡은 전임지의 성도들이 목사님과의 석별의 정을 아쉬워하며 만들어 준 것인데, 교인들은 그 떡을 보고 “부임하면서 떡 해 오신 목사님은 처음이다.”라면서 맛있게 먹으며 좋아하였던 것이다.2)

새로 부임한 서목사가 처음 착안한 목회 방침은 ‘젊은 교회’를 만드는 일이었다. 그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본 교회가 너무 늙어 있다고 진단한 것이다. 교회 젊은층은 서울을 비롯한 다른 지방으로 나가 있고, 교회에는 대체로 나이 많은 세대가 포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40대 젊은 나이에 충북에서 제일 큰 교회에 부임한 그는 의욕을 가지고 교회 갱신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 목회를 시작하였다. 옛 것이 죽어지고 새 것이 태어나는 데는 아픔의 진통이 따르기 마련인데, 그것은 넘어야할 산이라 생각하였다.


2) 서도섭 목사 위임식

이어 1971년 5월 16일 주일 오후 3시에 제13대 목사 서도섭 목사 위임식이 본교회당에서 거행되었다. 위임식의 위임국장은 이쾌재 목사가 되었다. 기도 서정래 목사, 성경 권헌중 목사, 설교 김정준 박사(당시 한국신학대학장), 특송은 성가대 지휘자이며 교대 교수인 박 진 집사3)가 맡았다. 위임국장으로부터 문답과 선언이 있은 후 박석린 목사가 축사, 각 기관 대표의 예물 증정이 있은 후, 서도섭 목사의 답사가 있었다. 이후 최인호 장로가 교회를 대표하여 하객 여러분께 감사 인사를 드렸다. 서목사의 축도 후 아래층에서 다과를 함께 나누며 교제하였다. 이때의 시무장로는 홍청흠, 김현태, 박종헌, 최인호, 한기창, 엄평우, 이태희 장로 등으로, 서도섭 목사를 당회장으로 모시고 당회를 구성하여 교회를 섬겼다.



1) 서도섭 목사(1932. 8. 24-2002. 10. 30)는 1932년 8월 24일에 전남 강진읍 서성리에서 참봉집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이 어머니가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음이 신실하였으며, 모태에서부터 어머니의 기도를 받고 있었음으로, 그의 신앙은 모태신앙이라 할 수 있다.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다녔으며, 어린 시절부터 목사의 꿈을 가지고 자랐다. 그러한 꿈이 성장하여 1952년 봄, 6.25 전쟁으로 부산에 피난하여 개교하고 있던 한국신학대학(한신대학 전신)에 입학하였다. 신학교 재학 중 그는 1957년 4월 18일에 신학교 동문인 최옥실과 결혼하였다. 그 후 시흥군 서면의 서면교회(현 구름산교회)의 전도사로 부임하였다. 1958년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하고 7월 30일에 목포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그해 8월에 해군 군목으로 입대하여 해군 군종 장교가 되었다. 그는 3개월 기초군사 훈련을 마치고 11월에 서해도서경비부대가 있던 백령도 해병부대로 발령을 받았다. 그 후 해병 포병 11연대, 해군 의무단, 해군사관학교 등을 거치며 약 8년의 군종 장교 복무를 마치고, 대구 영지교회에 부임하였다. 대구 영지교회에서 약 5년 동안 목양한 후, 청주제일교회 담임 목사로 초빙을 받아 청주에 온 것이다. 그 후 총북노회장(1974. 5) 학교법인 한신학원 이사를 역임하였다.

3) 박진 집사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을 졸업하고, 서울 향린교회 성가대 지휘를 역임하였으며, 1969년 청주교대 교수로 발령을 받아 본 교회에 출석하였으며 본교회 성가대를 지휘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성가대의 수준이 크게 높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