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노준성 이명수 한기창장로 장립하다.

 1963.1.27  제일교회 장로 장립.jpg


 1963년 1월 27일에는 노준성 이명수 한기창 3인이 장로로 장립되었다.

노준성(1901- )1)은 서울 출신으로 외동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으며 청주로 이사와 약전골목(현 가구점 골목)에서 목공업에 종사하였다. 1934년 세례를 받고 1937년에 제일교회 서리집사가 되었다. 1955년 안수집사가 되어 성실히 교회를 섬기었으며, 특히 남신도회에서 활동적인 것이 점수를 따 장로가 된 것이다.

이명수(1916- )는 청원군 문의면 문산리에서 태어났다. 청주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33년에 평양 숭실중학교 2년을 수료하였으며 1938년에 청주성경학원을 졸업하는 등 열성적인 신앙의 소유자였다. 그는 다재다능한 사람으로 특히 노래를 잘 불렀는데, 성가대 테너로서 맹활약을 하였다. 또한 스포츠를 즐겨, 충북 대표 육상선수(투창)로 활약하기도 하였다. 그는 성경학교를 졸업한 후, 30대부터 과수원 및 양봉원을 경영하였으며 1942년에는 과수원 조합 이사로 활동하였다. 형님인 본 교회 이창수 장로와 함께 양봉협동조합을 건설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8.15 해방 직후, 그는 해방의 기쁨으로 중앙공원에 나와 있는 사람들에게 중앙공원의 누각에 올라가 애국가 가르치기도 하였다. 1952년에 청주시 교육위원에 선임되어 활동하였고 농민회 충북지부 농경부장을 역임하였다. 1961년에는 세광학원 감사로 활동하였고 1962년 한국양봉협동조합 충북지부장으로 활동하였다. 이가 장로가 됨으로 형인 이창수 장로와 함께 형제 장로가 출현한 것이다.

한기창2)은 1921년 괴산 청안면 장암리 태생으로 1940년에 배재중학교를 졸업하였다. 학교를 졸업한 후 바로 증평초등학교 교사를 시작으로 교직에 발을 들여 놓았다. 1949년에 증평중학교 교사로 있다가 세광중학교가 개교하자 세광중학교 수학 교사가 되었다. 학교에 있으면서 대학을 공부하여 1960년에 국학대학을 졸업하였고 세광중학교 교감을 거쳐 세광고등학교 교감으로 봉직하였는데, 교회에서는 학생회를 지도하여 학생회 발전에 기여하였다. 이처럼 학원과 교회에 충성하는 40대 초반의 교회 일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