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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봉걸 목사 소천하다.
강신정 목사(12대) 취임하다.

 30] 강신정 목사 위임식기념 1967.3.12.png

 

강신정 목사 부임(1966. 10. 2)

안봉걸 목사 별세 후, 제12대 목사로 대구에서 강신정 목사가 부임하였다. 그는 1966. 10. 1(토) 청주제일교회에 이사와 그 이튿날부터 바로 사역하였다. 

새로 부임한 강신정 목사(사모 이원숙) 경상도 출신으로, 유명한 강신명 목사의 동생이다. 신학교를 졸업한 후, 1939년부터 평북 벽동읍교회 2년간, 사리원서부 교회 3년간, 서울 경동제일교회 6년간, 양평읍교회 3년간 시무하였으며, 6.25 전쟁 중에는 신앙을 지키려다가 포로로 붙잡혀 거제도의 포로수용소에서 2년간 억류되어 고생하기도 하였다. 그 후 장승포읍 교회 2년간, 수복 후 김천 평화동교회 6년간, 총회 전도국 총무 3년간. 대구 중부교회 3년간 시무한 후, 1966년 10월 1일에 청주제일교회에 부임하게 된 것이다.

그는 1954년부터 5년간 경서 성경고등학교장을 역임하였고, 1960년에 제7대 한신대 동문회장으로서 봉사하였으며, 김천 평화동교회에 있던 것이 인연이 되어 1957년부터 10년간 김천 시온중학교 이사로서 활동하였다. 그러면서 1962년부터 HLKY “명상의 시간”을 맡아 방송하면서 시청자들에게 영혼을 살찌웠으며 1961년 총회 전도국 총무로 있을 때에는 농촌교회 자립책을 창안해 내기도 하였다.

새로 부임한 강신정 목사의 위임식이 1967. 3. 12(주일) 오후 2시에 거행되었다. 목사 위임식의 분위기는 대예배 때부터 고조되었다. 그렇게 된 것은 1주일 전 곧, 3월 6일(월)부터 충북노회 사경회가 본교회당에서 한 주간 열렸기 때문에 교인들이 많은 은혜를 받았던 것이다. 당시 주강사인 일본 교토(京都) 한인교회 담임 목사이면서 재일 대한기독교회 총회장인 전영복(田永福) 목사는 하나님이 현대인에게 주신 복음은 화해의 복음임을 강조하면서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 자신과 이웃과의 관계를 바로 정립해야 함을 단순히 이론적인 면에서가 아니고 체험을 통해서 증거하였던 것이다. 나아가 자신만의 구원이 아니라 민족의 구원을 강조하면서 민족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야 할 것을 역설하였던 것이다. 거기에 3월 12일 주일 대예배 설교는 사경회 주강사로 수고하였던 전영복 목사가 담당하였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니 그런즉 이제 내가 산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산 것이라”(갈 2:20)라는 성경 말씀을 중심으로 “은총의 응답”이라는 제목으로 멧세지를 전하였는데 온 교인들이 큰 은혜를 받았다.

당일 오후 2시에는 4개월 전에 부임한 강신정 목사 위임식이 성대히 거행되었다. 위임국장인 장규상 목사가 사회를 담당하였다. 노회장 홍청흠 목사의 기도 장공  김재준 박사의 설교(엡 2: 11-23) “위대한 유산”, 본교회 성가대의 찬양(오! 주를 높일찌어다) 노회장 주관하의 서약과 공포, 위임 목사에 대한 김만학 목사의 권면, 교우에 대한 엄기현 목사의 권면, 정영숙 양의 독창, 각 단체 대표들의 예물증정, 전영복 목사(재일 대한기독교회 총회장)의 축사, 김춘배 목사(대한기독교서회 총무) 이민영 목사(총회 총무) 등의 축사와 위임받는 강신정 목사의 답사, 교회 대표로 홍청흠 목사의 광고, 김재준 목사의 축도로 위임식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