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5-1960 1939년 현 예배당를 착공하다.
2012.01.17 10:45
1939년 현 예배당를 착공하다.
禮拜堂 新築計劃
開城 胎生이신 朴相健 목사님이 오시고 곧 敎會堂 新築說이 나왔다. 곧바로 서울에 知面있는 건축가에게 依賴하여 設計圖가 작성되었다. 이어서 堂會에서 건축하자고 결의가 되고 있어 그 해 초겨울에 金益斗3)牧師를 招請하여 建築獻金募金을 위한 復興會를 개최하였다.
晝夜 集會와 새벽 기도회를 열며 제5일 저녁 기도시간부터 建築獻金 募金을 시작하였다. 박제만 장로, 이상필 장로, 유운혁 집사가 각각 千圓을 하기로 했으나, 다른 사람들은 앞사람들이 원체 큰 金額을 헌금하여서 감히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하고 中斷상태가 되었다. 그러자 박 목사님이 김익두 목사에게 말씀드려 “정순례 집사 작정하시오.”하고 講壇에서 외친다. 어머니께서 일어나셔서 “큰애 30원, 작은애 10원, 저 10원 이렇게 50원만 하겠습니다.”하고 앉으시니 뒤에 있는 朴相健 牧師님에게 물어보시고는 “안 돼요. 더 하세요.”하신다. 강사 목사님께서 헌금을 하도록 督勵 하시나 아무도 말이 없어 마감을 하고 김익두 목사의 간절한 기도로 집회를 끝마치고 散會하였다.
우리 네 식구는 집으로 돌아와 祈禱를 하였다. “저희가 너무 인색합니까? 오직 빈손으로 이사를 와서 고생을 하였습니다마는 오늘날은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습니다. 저희가 너무 財物에 눈이 어두워져서 하나님의 恩惠를 저버렸습니까? 참으로 두렵고 죄송합니다. 개구리가 올챙이 적 생각을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自服하오니 욕심으로 살려고 하는 이 마음을 용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저희가 분에 넘치는 恩惠를 입음같이 크게 바치겠습니다.”어머니의 懇曲한 기도에 우리도 눈물을 흘렸다. 기도를 마치고 어머니의 말씀을 따라 가덕 仁次里 논을 팔아 五百圓을 獻金하기로 결정을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이튿날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김익두 목사님과 박상건 목사님이 집으로 찾아오셨다. “잘 오셨습니다. 어제 저녁에 네 식구가 오백 원을 바치기로 작정을 했습니다.”하고 말씀을 하니 김익두 목사는 박목사를 쳐다보고 눈을 크게 뜨며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박목사는 “아니 그렇게 많이 하십니까? 저는 백 원을 예상했습니다.”라고 말을 하니 어머니께서는 “오백 원을 바쳐도 우리는 넉넉합니다.”그리하여 두 목사님은 고맙다는 말씀만 하시고 가셨다. 그날 저녁 예배 시간에 建築獻金捐補를 거두었다. 김목사님은 우리집을 대대적으로 광고 삼아 칭찬하고 선전하시었다. 그 날 저녁 목표액이 채워지고 무난히 예배를 마쳤다.
다음 해 解冬이 되자 박목사는 석수장이와 화강석 採取搬入계약을 하고 매일 牛馬車로 며칠씩 돌을 운반해 왔다. 敷地는 현 禮拜堂을 헐고 역시 남북으로 길게, 현 건물 중심이 서쪽 건물 最終線으로 하여 동편 學校 마당쪽으로 폭이 나가도록 자리를 잡아 測量을 하여 建物자리를 정하였다.